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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다시 빛(光)을 되찾았었던 날
벌써 74년이 지난
광복절(光復節)을 맞아
매헌윤봉길의사기념관을
소개합니다
기념관 주차장은
5분에 150원
1시간에 1,800원이네요
<관람시간>
[4~10월] 10:00 - 18:00
[11~3월] 10:00 - 17:00
매주월요일, 1월1일, 설/추석연휴 휴관
관람료 무료
중앙홀에서 만난
강직해 보이는
윤봉길 의사 동상을 지나
전시관으로 들어갔답니다
12세에 3·1운동을 겪은 윤봉길 의사는
식민지 교육을 강요하는 보통학교를
자퇴하였답니다
19세에 농촌계몽을 위해
야학을 개설하였는데
1929년 윤봉길 의사의
농촌계몽사상을 바탕으로
월진회(月進會)가 창설되었고
문맹 퇴치, 애국사상 고취,
농촌 경제 향상 등의
활동을 하였답니다
장부출가생불환(丈夫出家生不還)
사나이가 뜻을 품고 집을 나가니
그 뜻을 이루기 전에는
살아 돌아오지 않겠다
1930년, 윤봉길 의사는
항일 투쟁을 위해
압록강을 건넜답니다
'자식 사랑하시는 어머니에게'
집을 떠난 후
어머니에게 처음 보냈었던 편지
압록강을 건너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칭다오에서
상하이에 갈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
일본인이 경영하는
세탁소에 취직하였는데
항일 투쟁을 위해
일본인의 습관과 문화를 익히려는
목적이었다고 합니다
1931년,
드디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는
상하이에 도착한 윤봉길 의사는
훙커우공원 근처 시장에서
야채 장사를 하면서
거사의 때를 기다렸답니다
1932년 4월 29일,
일왕의 생일 겸
상하이 침공 전승 축하식이
훙커우공원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거사를 결심하였답니다
4월 29일 당일,
김구의 부탁으로
함께 마지막 아침식사를 했답니다
6원을 주고 구입한 자신의 시계는
이제 1시간밖에 소용이 없다면서
2원짜리 김구의 시계와
바꾸었다고 합니다
훙커우 행사장 안에
매점이 설치되지 않아
도시락과 수통을 지참하라는
신문기사를 보고
도시락 폭탄이 만들어졌답니다
3만여 명의 군중이 모인
훙커우공원에서
폭탄을 단상 위로 투척하여
상하이 파견군 총사령관
시라카와 대장
상하이 일본거류민 단장
가와바다를 처단했답니다
폭탄이 터진 후
곧바로 체포된 윤봉길 의사는
일본군 상하이 파견군 군법회의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는데
그의 나이 25살이었답니다
윤봉길 의사에 대해
도시락폭탄을 던졌었던
열사로만 알고 있었는데
대한민국 광복의 초석이 되었던
윤봉길의 생애를 느껴볼 수 있어서
뜻깊었던 방문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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